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는 스물일곱 살 나이에 삶의 의지를 잃었다. 그가 작곡한 두 번째 오페라는 개막 당일 밤에 막을 내리는 참담한 실패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년 동안 어린 두 자녀의 죽음에 이어 사랑하는 아내마저 콜레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 복합적인 트라우마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이어졌고, 음울하고 운명론적이며 거친 성격을 고착시켰다. 자신의 존재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점차 은둔자가 되어 삼류소설이나 읽으며 곡을 한 편도 쓰지 않았다. 작곡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런 그의 주머니에 한 극장의 감독이 새로운 오페라 <나부코>의 대본을 찔러 넣었을 때, 베르디는 혐오감에 차서 '거의 폭력적인 몸짓으로' 탁자 위에 던져 버렸다. 그러나 내던져진 대본 두루마리가 펼쳐졌고, 그는 자신 앞에 펼쳐진 페이지를 바라보다가 어느 한 문장에 눈길이 멎었다.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
'(Va pensiero sul'al alidorati.)
바빌론에 잡혀 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시작되는 그 귀절이 그의 마음을 뜨겁게 흔들었다. 베르디는 그 문장이 오스트리아의 지배와 탄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국 이탈리아의 애국자들에 대한 은유로 보였다. 거기에 가족을 잃고 작곡가로서도 실패한 개인적인 아픔이 감정이입돠었다.
그날 밤 그는 그 대본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읽었으며,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홀린 듯이 곡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완성된 오페라 <나부코>는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 작품으로 베르디는 오늘날까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되었다. 그리고 '바 펜시에로'(날아라 생각이여)는 제2의 국가로 불릴 만큼 모든 이탈리아인이 가슴으로 아는 멜로디가 되었다.
지금도 이탈리아에서 <나부코>를 공연하면 마지막 앙코르로 청중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따라부르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았다. 베르디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나의 장례식에는 어떤 음악도 연주하지 말라"라는 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8천명이 함께 '바 펜시에로'를 불렀다. 생각이 금빛 날개를 타고 날아올라야 할 때는 삶이 밝고 희망에 차 있을 때가 아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어둠에 갇혀 있을 때가 바로 그때이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 1가의 고전음악 감상실 '르네상스'의 어두운 구석에 앉아 의미도 모른 채 듣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이태리 유학을 꿈꾸는 음악도에게서 가사의 뜻을 전해 듣는 순간, 내 생각도 마음도 어둠 속에서 금빛 날개를 달고 비상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젊은 날, 어떤 희망이 문을 열었다.
지금도 나는 뜻밖에 찾아온 병과 싸우며 이 육체적 시련이 내 정신까지 잠식하지 않도록 글쓰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서 썼듯이, 신은 길을 알려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조개를 부순다고 진주까지 부서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개가 부서져 진주가 드러난다. 작가가 아는 모든 빛이 단어마다 깃들 때 그 글은 빛을 발한다.
진리 추구의 길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작은 성취, 작은 만족, 작은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위대한 성취, 절대 만족, 궁극의 행복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무감동과 무감정을 깨달음의 상태로 착각하게 된다.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영혼 안에 혼돈이 필요하다. 모래 속에서 알을 깨고 태어나 온 존재를 다해 달려가지 않는 새끼 거북이는 심해를 경험할 수 없다. 가슴에는 태풍이 있어야 한다. 그때 생각이 금빛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수 있다.
-류시화 시인의 페북에서
♡좋은 글, 좋은 노래!
♡감상하세요!
🎶 히브리노예들의 합창
https://youtu.be/ntflUU_xmqY?feature=shared
아래의 글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 아름다운 분량, 하루 (lovingpine.com)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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