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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

by 러송 2024.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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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바람을 붙들고서라도​
악착같이 장사를 했기에​
자식 넷을 ​보란 듯이 키워 장가보내고 나니​
애써 열심히 할 것도​ 가꿀 것도 없는
나이가 돼버린 게​ 조금은 억울하지만

사놓은 건물에서 나오는 달세로 ​
여유 있게 살고 있다는 노부부가​
새벽안개 짙게 드리운 거리를 ​
가방 두 개를 끌고 걸어 나오더니
고속버스 ​터미널 대합실 귀퉁이에 앉아
초조한 눈빛으로 사방을 살핍니다

“여보...​
큰아들내로 먼저 갑시다“

멍울진​ 거리를 달려가는 버스를 타고 ​
도착한 곳은 큰 아들이 있는 ​
대전에 한 아파트 앞이었는데요

"아니..​아버지 어머니​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물이나 한잔 다오"

바람 길 숭숭 난 가슴을​
먼저 열어 보인 건 엄마였는데요

“네 아버지 고향 친구​
준태아저씨 너도 알거다“

“준태아저씨가 뭐 어쨌다고요?”

“네 아버지가 망한 준태어저씨​
보증을 써주는 바람에​ 우리집도 경매로 넘어가 버렸지 뭐냐 "

“그럼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종점
종점


며느리가 차려온 술상에 ​
막걸리 몇 모금으로​ 지친 설움을 적셔나가던 아버지는 ​어렵게 입을 엽니다

“큰애야...​
이년전에 병원 넓힌다고 빌려 간​
일억을 돌려주면 안되겠니..?“

“그 말씀은 ​병원문을 닫으라는 소리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니네집에 있기도 그렇고 ​
당장 오갈 데가 없어서 그래“

“아무튼 그 돈은 지금 갚을 수가
없으니 그렇게 아세요“

“그럼 우린 어떡하냐“

“그건 처신 잘 못한 아버지 문제니까​
알아서들 하세요“

라는 말로

할 말을 다했다는 듯​ 문을 닫고
출근을 해버리는​ 아들의 뒷모습에
배어든 서러움을​ 지우기 위해
남은 술 두어 잔을 연거푸 들이킨 아버지는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아내 얼굴 조차 바라보지 못합니다

자식 일이라면 빗장 열어​
부는 바람이 되어 주고픈 게​
부모의 마음이란 걸 몰라주는 ​
큰아들 내외와

목말라가는 일주일이 흐른​
어느 날 밤

“그러면 이대로 계속 지내자는
거예요”

“갈 데가 없다는데 난들 어떡해”

“시골에서 ​넓게 사는 둘째 아들 집도 있으니​ 그쪽으로 가시는 게 어떠냐며 ​
당신이 말 좀 해 봐요“

아들과 며느리의 ​
싸우는 듯한 투박한 음성이 들려오고​
연이어 ​문을 노크라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아버지 어머니....​
순천에 있는 형석이네에
가 계시는 건​ 어때요?"

더 이상 ​할 말은 눈물이라
침묵으로 하고픈 말을 전한 아버지는​
집을 떠나온 그날과 같은 길을 ​
짙은 어둠을 뚫고 나서고 있었습니다

“형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그래 어쩌다가 늘그막에 ​이런 엄한 꼴을 당하셨데요“

“너희에게 면목이 없구나”

“내 집이라 생각하시고 편히 계세요"

과수원을 하는 아들과 며느리는 ​
살갑게 노부부를 맞이해주는 걸 보며​
자식 하난 잘 키웠다며​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시간도 잠시

농번기 농사일 때문에​
마음보다 몸이 먼저 지쳐버린
노부부는

고단했는지 늦잠을 자고 있을 때​
거실에서는 아들과 며느리의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요

“여보..  ​
아버님이 큰애 아파트 계약할 때 빌린 돈
달라고 하면  없다고 하세요"

서로 필요로 하는 가치가 있을 때​
이루어지는 관계에서​
가족이라는 것도 예외일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을 또 한 번 느끼며​
아픔으로 견디다 일어난
다음날도

자식에게 좋은 일이​
부모에게도 좋은 일이라며 ​
땀방울 마를 날 없이
일손을 거들고 있었습니다​

“농촌에서 일손이 귀한데​ 김 여사네는
든든한 ​일꾼 둘이나 구했으니 좋겠슈.."

“이번 농번기만 끝나면 ​
다른 자식들한테 가라고 해야죠“

며느리가 ​
이웃 사람이랑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부부는

한 번도 ​가족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을​
눈물로 애써 지우고는

다음 날​
몸 둘 곳 없는 새벽이슬을 친구삼아​
달이 적셔놓은 길을 나섭니다

비틀어진​ 마음과 마음 사이에 베어 든​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살얼음이 낀 처지를 한탄하며​
대합실에 앉은 노부부는

3년 전 ​
결혼한 막둥이 아들이 낳은 ​
갓난 손자가 보고 싶어서인지​
강릉행 열차에 몸을 싣고 달려왔지만

노부부는​
아파트별을 누르지 않고​
계단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만 있더니​
더 깊어져 가는 슬픔에​
힘없이 일어나 내려오고 마는데요

(아기가 자고 있으니 ​
벨을 누르지 말아 주세요)

라고 ​
현관문에 써 붙인 종이를 보고​
차마 벨을 누르지 못한 노부부는​
숨소리 조차 내지 못할 그곳보단

“정선이한테 연락 한번 해보구려”

“예전엔 하루가 멀다고 전화가 오더니​
서너 달 전부턴 아예 연락도 없고​
전화해도 받질 않더라고요“

서러움을 ​뉘인 젖은 꽃잎이 되어​
역전 대합실에서 쪽잠을 자야만 하는 ​
토하지 못한 묵은 마음을 지우려 ​
내키지않는  딸의 아파트 벨을 눌러대 보지만

((((띵똥….)))

아무리 눌러봐도​
열리지 않는 문만 처다보다​
쓸쓸한 마음으로 뒤돌아서려는 그때​
앞집의 현관문이 열리더니

"지금 그집엔 아무도 없는데​
왜그러시죠?“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여기사는 사람이 제 여식이구먼요“

앞집 여자가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
택시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온 곳은 병원이었고​ 묻고 물어 겨우 찾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노부부는

링거병에 ​
의지해  잠들어 있는 딸을 보고 ​
꼬꾸라지듯 달려드는 허기진 눈에서
떨어지는 ​까닭 잃은 눈물만이​
그 이유를 묻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니 이것아​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했어야지“​

“엄마 아버지 걱정할까봐...“

“우린 그런 것도 모르고...“

“저 때문에 ​두 분께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병원 옥상 공원에 나란히 앉은 ​
세 사람은 어문달을 바라보며
세월에 씻어도 까맣게 묻어나는
아픔을 ​애닳게 바라만 볼 뿐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일이..”

“한푼도 보태준 게 없는 네게 와서 ​
이런 소리를 하는 게 면목이 없구나“

“제가​ 두 분 거처할 곳을 알아볼 테니까​ 불편하겠지만 일단 제집에 가서​ 지내세요“

“말만으로도 고맙구나”

자식들과의 과거의 추억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 온 한평생이​
그저 ​원망스럽기만 했지만

자식은​ 부모를 가진 적도 없었으니까.

자식이 ​
우릴 버렸다고 생각지 말자며......

그날 밤​

남은 해 끝자락에 걸린​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이야기로​
딸과 이별을 한​ 노부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딸의 집이 아닌 ​
예전에 자신들이 살던 집이었습니다

“자식들 마음 다 알았으니​
이제 영감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6개월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자식들 속 마음을 알기 위해
길을 나섰던 노부부는

잊혀짐보다 더 가슴 아픈 게​
버려짐 같다며 ​
지는 노을에 비친 막걸리 한잔에​
해묵은 설움을 토해내더니

자식도​
그저 좋은 남일 뿐이라는 ​

세상​ 떠도는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을 몰랐다며
                  
​“자식 한번 앉은 자리엔​
백 년 동안 풀도 안 자란다잖아요“

“종점에 와 봐야 알게 되는 게​
인생이라더니만..“

비가오면 ​부엌에 있는 온갖 그릇 다 가져와​
떨어지는 빗물을 받쳐가며

밥술에 ​반찬 서로 얹어주는 행복으로​
복닥거리며 모여 살던
그날을 ​그리워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노부부는
자식들 속 마음을 알기위해
길을 나섰던 노부부는
가진 재산 전부를​
가장 늦게까지 사랑해 줄 사람이​
부모란걸 모르는 자식들 대신​

가진 재산 전부를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기부하고

멀어진 자리에​ 쉬어가는 바람이 전하는
말들이 나 뒹굴고 있었습니다

피보다 진한 건​
돈이었다며...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마음이 짠하네요!
♡현실이겠죠!
♡나도 저들도 모두가 격어야 하는...!


🎶 https://youtu.be/ZeAGT50TUVw?si=POp2EraHjts7mLFd

 

아래의 글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 정채봉 (lovingpine.com)

 

기도 / 정채봉

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꼭 다문 입술 위에 어린

lovingpine.com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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